사람은 역사 속에 살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김복진.
복원의 전 과정을 주관한 이병호(47).김복진은 인생에 적극적으로 동세(를 끌어들이고).
그는 서양의 모방과 일본의 아류에서 벗어나 조선의 전통에 기반한 민족적 조각을 추구했다.사진으로만 남은 근대조각 수작 첨단기술 활용 80여년 만에 재현 원작과 구분되는 새로운 분위기 이 시대에 돌아본 작가의 예술혼이병호·장준호.원작을 탐구하고 객관화하는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생겨났을 이 ‘틈은 그러나 일제강점기와는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관람자가 떠안아야 할 몫일 것이다.
모델의 나이를 2차 성징이 지난 고교생으로 추정했다.김복진 조각 프로젝트.
29일까지)전에서 감상할 수 있다.
동경미술대 유학 시절부터 ‘토월회 ‘파스큘라 등 사회주의 문예 단체를 조직하고 이끌던 그는 1923년에는 민중미술론의 효시라 할 ‘상공업과 예술의 융화점을 발표했으며.‘날마다 하는 일 새로울 것 없습니다(日用事無別)/ 오직 자신과 절로 만날 뿐입니다(唯吾自偶諧)/ 신통과 묘한 재주(神通幷妙用)/ 물 긷고 나무하는 일입니다(運水及般柴).
그사이 만들어진 풍경인 게다.빡빡 깎은 민머리가 시리어 망념도 운치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법당문을 열고 내다보니 온 세상이 하얗다.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한 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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